전화 넘어로 들었을때는 "야, 그러면 나는 뭐야?" 하고 웃으면서 넘어갔다. 나는 여자로 볼 이유가 없고, 마음 고생에서 비롯된 이유니까 화가 날 것도 없고 뭐 친구라는게 그런거니까 했다. 다시한번 눈으로 마주 했을 때도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갔다. 내 공간도 아니고 내가 민감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으니까. 사람따라 맞춰서 말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앞 뒤 안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 대놓고 까는거 아니냐고, 그걸 또 발견한 S가 그렇게 나한테 말하고 나서야 아, 응, 그런가 하고 나한테 되 물으면서 내가 마음이 상했거나, 빈정이 상했다는 걸 알았지.
사실 정신이 조금 들었던건 며칠 전의 일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나쁜 말을 둘러둘러 듣고, 그걸 또 험담하고 있으니까 화가 조금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뭐하러 엄한데다 에너지를 쏟고 있나.
네가 기억하고 있는 내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네가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누가 나쁜새끼라고 욕하면 또 친구라고 발끈해서 변호하려고 하는 나란년은 배알도 없네. 내가 잘 끊어내는건 남자밖에 없는 것 같다. 연애는 많이 해봐서 또 부질없는걸 잘 알게 된 것 같은데, 친구는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불구가 된 것 같아서, 여기저기 말을 시작하려다가 어줍잖은 소리나 하고 있고 정작 본인에게 말을 해도 생각지 못한 말이 돌아올 것 같다.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으면 멀어지니까, 메신저 따위는 사실 보충효과 밖에 없다. 애정이 있는건 특별해서가 아니고, 어쩌다가 자주 봤는데, 그만큼 편하게 자주 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다 모르겠고, 배알 없는 이년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를 똥통으로 밀어넣고서 사는지 도저히 답을 못내겠다. 그런데 뭐 내 삶을 이렇게 만드는게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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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category 완두콩
2010/08/26 15:08
# 1
한국에서 r의 예전 회사 친구가 놀러왔다. 공항에 마중 나갔다가 집에 오면서 내가 커피에 술타먹은 이야기를 한 모양인데 그 친구는 믿지 않았다고. 그리고 어제 집에 둘이 같이 들어오며 문을 열자, 커피에 술 넣어먹고 있는 제가 두분을 반겼지요.
.... 아 술꾼 돋네.
억울한데, 진짜 향밖에 안냈어 난.....
# 2
5월 전시 끝나고 6월까지 한동안은 아가들이랑 같이 놀며 밤새 술마시고 잘 놀았는데,
그 마저도 질려서 한동안 다른 것 하느라 밖에도 안나갔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술이 먹고 싶은데
같이 술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 나는 그냥 집에 리큐르들을 쌓아놓고 한잔씩 두잔씩.
한 이주동안 안 나갔더니 사람이 보고싶긴 한데, 보고싶은 사람이 없다.
# 3
놀러왔다는 친구는 한국 날씨에 맞게 반바지 반팔만 가져와서,
나님은 살이 빠졌을때 입던 이제는 옷장에 살폿이 개어져 꺼내지 못한지 한참이 된
26인치 바지를 내어주며 어쩐지 씁쓸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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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사이에 내가 가장 잘한일을 손에 꼽자면 contact improvisation을 시작한 것.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 일정 속에서도 매일 계속 되는 수업이 끝나고는 '아, 잘 했다'를 수십번은 되뇌었다. 몸으로 움직이는 그 어떤 것보다 좋았습니다. 실낱같은 맞닿음으로 움직인다. 공기를 그린다, 내 스스로가 공간이 되라는 시모네따의 설명은 어떻게 들으면 너무 뜬금 없는 설명들이었지만 시작하고 나면 너무나 당연해진다.
몸으로 안살고 혼으로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식욕도 수면욕도 성욕도 왕성할 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 같다. 혼으로 수많은 시간을 농축시켜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모르겠다. 난 그냥 자고 일어나고 책보고 잉여질 하고 만화보고 갖가지 취미생활 하고 그러고 산다. 별일 없이 산다고는 못하겠다. 이 시트콤 인생에 그런걸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배웠어야지. 네이버에 연재하시는 모 만화가의 말을 빌자면 실소도 웃음이다. 그래서 결론은 어쨌거나 웃고 산다.
자존감이 없어서 늘 칭찬을 해줘야 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귀찮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처음에 이자식이 자존감이 없는 녀석인지 파악이 안되면 무용 지물이다. 살면서 매 순간을 다짐하듯이 착한사람이 되지 않을 테야라거나, 스스로를 사랑할테야 라고 되뇌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속이 불편하다. 관계의 사이에서 해결이 안나는 것들을 끝까지 알아야겠다고 칭얼 거리는 것도 불편하다. 사람 관계가 귀찮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야. 내 주변사람이 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내게 상처가 된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의 애정을 줬기 때문이고 내 책임인거다. 여기까지 말하면 사람들이 착하다고 말하지만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게서 어떤 상처를 받아가던 그건 애정을 준 사람의 책임인거고, 그걸로 성가시게 하면 그것만큼 짜증을 돋구는게 없다. 사랑한 사람들을 원망할 생각도 없고, 나를 사랑했다고 해서 그 원망을 받아 줄 생각도 없다. 누군가가 나쁘거나 틀린게 아니다. 안맞는거야. 안맞는 열쇠로 문을 열심히 열려고 해봐야 열리지 않는다. 열쇠가 잘못된 것도, 문이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
하기 싫은 공부를 2주나 해야해서 틈틈히 도망칠 기세로 피아노 연습을 했다. 영화 아멜리에에 나오는 Comptine d'un autre été l'après-midi. 노래가 쉬워서긴 하지만 제법 그럴싸하게 친다. 예체능 전 분야를 오고가며 삽질을 하고있다. R이 그랬다. 돈버는 것 빼고는 다 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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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갑자기 공부하다 말고 도토리 묵이 먹고 싶었다. 열씸히 묵가루를 검색하다 결국은 찬장에 있는 웨이트로즈 판 옥수수 전분으로 가짜 묵을 한판 쑤었다. 그리고 옥수수 전분도 묵이 될까 고민하며 옥수수, 옥수수 하다보니 올챙이묵이 생각 났다. 올챙이묵은 옥수수를 갈고 묵처럼 쑤어 구멍뚤린 박바가지 틈으로 찬물에 흘려내서 양념치고 국수처럼 먹는 음식이다. 파란 원피스에 빨간 양말 신고 밀짚 모자 쓰고 새침한 표정으로 사진 찍던 일곱살 이후로 나는 강원도 춘천 촌년이었고, 그 덕에 2일 7일에 장이서는 풍물시장에서 올챙이묵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내가 가던 풍물시장에 그 가게에는 올챙이 국수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알갱이 모양이 딱 올챙이 스러워서 올챙이 국수라는 이름일꺼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그 일곱살 이전에도 우리 큰집은 그 시장 근처였고 내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는 두살밖에 어리지 않지만 분신 같았던 내 동생 손을 꼭 잡고 셋이서 나란히 시장으로 향해서 올챙이 국수 한사발 먹고 오고는 했다.
글을 쓰다가 아빠가 어릴때는 어려워서 먹어야 했던 음식이라며 처음 소개 시켜줬던 기억도 난다. 타향살이에 지쳐 눈앞에 두고도 온갖 그리움이 밀려오는 듯한 표정이 아빠 얼굴에 스쳐 지나갔던 것 같은 기억도 난다. 물론 그때의 나는 보고도 무엇인지 몰랐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지방 유지였고, 아빠가 좀 반항아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늘 굉장히 열씸히 살았고 어렵게 살았던 적이 없었다 그때 까지는. 어디서 애한테 구라를.
어쨌거나 음식으로 돌아가서, 시장 어귀 그 가게에는 총떡이 있었다. 얇게 메밀전을 부쳐 무채 무침을 넣어 돌돌 말아주는 음식인데, 유명한 막국수 집에도 대부분 있는 메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 간판도 없는 집 총떡 맛은 따라오지 못해서 서울로 이사간 이후도 나는 내내 '그 가게' 총떡만 고집했고 의도한바는 아니었지만 마치 비밀처럼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주 어릴때는 그 가게에서 부화하다 만 병아리를 찐 곤계란이 가득한 찜솥을 봤던 기억도 난다. 어떤 것들은 무려 깃털도 보였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먹어본 기억이 없는 것일테지.
시장어귀 작은 식당안에서 매우 건강하고 풍채 좋던 젊은 우리 아빠와, 그때에도 지능 발달이 느렸지만 아직은 아가여서 문제 될 것이 없었던 볼이 호빵 두개를 물고 있던 것 같은 내 동생과, 동생 손을 놓으면 죽는 줄이라도 알았던 미련하고 착했던 나와 상위에 있던 올챙이 국수와 총떡 그리고 아빠의 소주 한병.
무엇이 이 그리움의 시작이었나. 도토리묵이었던가. 아니다. 낮에는 D가 말을 걸었다. 서로 보고싶다고 하면서도 서로 다시 마주치기라도 하는건 서로에게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다며 병신춤을 추었다. 며칠전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제법 가까이 지냈던 그러나 지금은 아프리카에 있는 S가 보고싶었다. 나는 지금 음식이 그립고 오랜 시간 전이 그립지만 가까운 시간도 그립다. 흥겹고 정겹던 서울의 시간들도 그립고, 분당에서의 부드러운 침대보와 창밖으로 보이던 빌딩들과 야경 그리고 망초도 그립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수다를 떨던 짧은 스탠포드에서의 시간까지도 그립다. 보지도 못하고 닿을 수도 없었던 가니메데나 물속의 삶이 아니라 지나왔던 시간의 모든 것들을 보고싶기 시작했다. 그것들도 지나와서 닿을 수 없는건 마찬가지 겠지만.
마지막으로 갔던 그 시장에는 더 이상 곤계란도 없었고, 올챙이 국수도 없었지만 총떡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시장이 없어진다네. 허허.
뜬금없이 결국 나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은 되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너무 뜬금 없어서. 그러니까 부담 없이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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